3년차에 맞는 3번째 이직_1
비전공 , 그것도 예체능 출신 마케터. 그녀는 왜 진득하게 일하지 못하고 이직하게 되었는가.
1. 비전공, 그것도 예체능 출신의 마케터의 스타트업 일지
‘그 정도면 끈기 없는 MZ 아니야?’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를 찾아가는 과정 , 생각보다 운이 더럽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면 제목과 부제목을 읽고 이 글을 읽고계실 여러분들은 생각하실수도 있겠죠. 그런거 다 핑계 아닌가? 이런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게다가 왜 스타트업이고 또 마케터였는지 생각하실수도 있겠죠.
우선 제 소개를 간단하게 하자면, 체육 전공의 비전공출신 마케터입니다. (물론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사는 있지만)하지만 요즘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이런걸 따지는 세상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죠. 사실 전공과 관련되지 않는 일을 하는건,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처음 취업하는, 경력이 없는 사회초년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일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랬고 , 두번의 실패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약 1년 7개월간의 경력을 , 그것도 왜 스스로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2. 사람 인생이라는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첫번째 실패, 스포츠 대행사
처음 들어간곳은 스포츠 대행사였습니다. 특이한 점을 꼽자면, 그 중에서도 IT를 통한 시장에서의 DX(디지털 변환)을 시도하는 곳이였어요. 저는 이런 차별점들이 수직적이고 좁은 시장에서, IT를 통해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직장은 제가 생각한것과 상이한 업무들의 연속이였습니다. 여러분의 생각하는 ‘업무의 강도가 높다’라는것은 어떤것인가요? 저는 영하 20도에서 , 또 영상 40도 가까이 되는 야외에서 , 현장 지원 뿐만이 아닌 기존 사무실의 데스크 업무를 포함한 모든것을 해야하는 환경이였습니다. 평균 근무 시간도 약 18시간 이상이였고, 출퇴근거리도 아주 멀었으며, 심지어는 출장도 잦던 그런곳이였죠. 저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강제적으로 술을 먹어야 하는 분위기도 저에겐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론 그런것들은 아무래도 후순위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가장 힘들었던건 , 스스로의 정확한 니즈 파악이 안된 상태로 막연하게 ‘스포츠 마케터’라는 꿈만 꿨던 제 자신이라는걸 깨달았을 시점이였죠.
그러다가 퇴사를 결심할만한 사건이 왔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메인 프로젝트 입찰을 위한 준비를 하던 중 , (물론 이것도 정말 갑작스러운 입찰이였습니다.) 사수가 디자인적인 , 또는 제품적인 욕심을 향해 능력 외의 요구를 저에게 하기 시작했고 , 디자인적 요소를 다룰줄 알던 저는 또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신입 디자이너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모두가 같이 입찰 제안서를 완성한 뒤에, 저에게는 원본조차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현타를 많이 느꼈어요. 실제 실무진들과 만날 기회가 부족했던것 , 메인 프로젝트를 주는 오너십이 부족했던것, 이 모두 연차가 부족하니 이해할만한 상황이라고 넘겼던것들이 쌓여, 저의 기여도도 상당하던, 저의 피땀눈물도 담긴 입찰제안서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참으로 개탄스러웠습니다.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다
제가 해당 회사에 입사를 결정했던 계기들 중 하나는 ,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실무를 경험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였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수 많은 협회와 구단의 실무 활동을 했고, 그런 직무들이 익숙했고, 그런 역할을 기대했다는 점이였죠. 제가 해당 직무와 관련하여 오너십을 어느정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거죠.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저에게는 점점 더 오너십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수를 제외하면, 팀원은 3명이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입사하신 분은 모든 출장을 거부(?)하며 그에 대한 공석을 누군가는 메꿔야했고, 입사 시기는 비슷하지만 메인적인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회는 다른 팀원에게 쏠리며, 저는 그런 모든것들에 대한 백업 수행과 중간다리 역할을 점점 더 자처하게 되었고 , 그에대한 결과로 제가 기여한 프로젝트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그 상황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것에 매몰되어있던 저를 발견했습니다. ‘체육’과 ‘경영'을 전공하고, 협회와 구단의 외부활동을 많이 했으며,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 공간들에서 옛날만큼의 스포츠를 향한 열정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고, 그로 인해 쌓인 6년의 시간들을 버릴 용기가 나지 않아 제 지난 스포츠마케터를 향한 6년의 시간을 아까워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나아지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버텼던것이였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앞으로 재밌는 일을 찾으려면, 전공 , 제가 쌓아온 6년의 시간을 버려야 하는것을요. 매몰되어있던 지난날의 시간은 보내고, 더 늦기전에 제가 좋아하는것을 시도해보기로 헀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참 마케팅이라는 본질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직접 대회를 기획하고, 사람을 불러모으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 하는지 추적하고, 제가 만든 콘텐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던거죠.
그래서 마케터로서의 변화를 시도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게 최종 입찰에 성공한, 제 이름은 올라가지도 못한 마지막 프로젝트를 미련없이 버리고 퇴사를 진행했습니다.
3. 스타트업 맛보기
두번째 실패, 모빌리티 스타트업
그래서 스타트업에 눈을 돌렸습니다.
1. 연차에 비해 많은 경험을 받아 오너십을 경험해 볼 수 있으며,
2. 수직적인 집단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의사 소통이 가능한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지난 직장을 통해 얻었던 레슨런은 , 저는 ‘기술’을 활용한 프로덕트에 꽤나 관심이 많다는 것이였습니다. 전 직장에서는 DX가 활발하지 않아 정말 시장의 파이오니어였고, 그것에 대한 개선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IT 기반 스타트업’의 ‘마케팅’ 직무를 알아보게 되었고, 그렇게 두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회사는 외국인을 상대로 모빌리티 플랫폼을 운영할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여행 플랫폼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모빌리티 기반의 모기업에 흡수합병이 확정되어 ‘외국인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신사업으로 진행하고자 했고, 저는 이에 맞춰 발탁된 마케터였죠.
하지만 제가 입사하고 나니, 서비스의 실체가 없었습니다. 서비스를 담당하던 PM은 계속 어디론가 세일즈를 나가며 프로젝트는 뒷전이였고, 결국 모기업에 보고를 해야될때가 되니 아무것도 된게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서비스에 대한 오너십을 다른 공동창업자에게 넘겼습니다.
저는 이분과 함께 프로덕트의 A to Z를 설계했습니다. 노코드툴로 베타 서비스를 출시하기 이전까지, 모든 정책과 웹디자인, 콘텐츠, 상품기획 , CRM 운영, 베타 서비스 운영 등 관리는 그분께서 하시고 모든 실무영역을 담당하게 되었죠.
솔직히 조금 황당했긴 합니다. ‘서비스’를 마케팅하러 뽑힌 사람인데, 서비스가 없다니..
하지만 위기를 기회 삼아 도전했습니다. 직접 서비스를 기획해본 마케터라면, 나중에 정식 서비스가 출시되었을때의 우리의 고객이나 ICP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고, 퍼널도 더 단순하게 기획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PM을 담당하던 공동창업자분께서 퇴사를 해버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또 황당했지만 , 그럼에도 저에게 주어진 오너십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비록 1년차임에도 주어진 채용, 프로덕트 인계, 출시 이전까지 쌓인 데이터를 개발팀과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공유하며 정식 서비스 론칭을 준비했고, 실제 마케팅 영역을 조금 더 넓히기 위해 영업팀과 시작했던 B2B 마케팅에서 꽤나 큰 성과를 거두며 어느덧 기대되는 출시를 앞두고 있었으나..
모기업에서 합병 파기를 진행하며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위기를 막기 급급하던 경영진과 ,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던 정보들 , 그렇게 수면위로 떠올랐던 위기들은 쌓여 ‘합병 파기로 인한 전 직원 정리해고’라는 수순에 이르렀죠.
그렇게 국가에서 나오는 실업급여의 대상자가 되었고, 저는 애매한 경력을 가진채 갑작스런 공백기를 얻었습니다.
급작스러운 issue로 또 퇴사하게 된 안나, 과연 어떻게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났을까요?